존 오브 인터레스트 (일상적 해리, 도덕적 무감각, 억압된 죄책감)
존 오브 인터레스트 (일상적 해리, 도덕적 무감각, 억압된 죄책감)
조나단 글래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홀로코스트를 재현하기보다, 인간이 어떻게 극단적 폭력과 공존하면서도 심리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탐구하는 심리 실험에 가깝습니다. 이 영화는 가해자의 일상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보여주며, 정신건강학적으로는 해리(dissociation), 도덕적 둔감화(moral desensitization), 방어기제, 집단 동일시, 그리고 초자아의 왜곡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한나 아렌트, 칼 융, 스탠리 밀그램, 에리히 프롬의 이론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인간 심리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평범한 일상과 비극의 공존: 해리와 심리적 분리
루돌프 회스 가족의 평온한 일상은 담장 너머의 학살과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그러나 이 대비는 단순한 연출 장치가 아니라 ‘심리적 해리’의 시각적 표현입니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을 직면할 때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현실을 분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루돌프 가족은 담장 하나를 경계로 물리적 공간을 나누지만, 동시에 심리적 공간도 분리합니다. 학살은 ‘업무’이고, 가족과의 시간은 ‘사적인 삶’입니다.
이러한 분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해리 반응과 유사합니다. 끔찍한 현실을 완전히 인식할 경우 자아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감정을 차단하고 감각을 둔화시킵니다. 루돌프가 강에서 뼛조각을 보고도 이내 몸을 씻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장면은 충격을 인지하되 감정적으로 연결하지 않는 전형적 해리 반응입니다.
헤트비히가 소각장의 재로 정원을 가꾸는 장면은 더욱 상징적입니다. 이는 죽음이 삶의 자원으로 전환되는 왜곡된 인식이며, 심리적으로는 ‘도덕적 차단(moral disengagement)’이 작동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무감각한 악: 초자아의 왜곡과 도덕적 둔감화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 재판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제시했습니다. 극단적 악은 사디스트가 아니라 규범에 순응하는 평범한 인간에게서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루돌프 회스는 가족을 사랑하고 승진을 기뻐하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대량 학살 시스템을 효율화하는 관리자입니다.
프로이트 이론에서 초자아(superego)는 도덕적 판단을 담당합니다. 그러나 나치 체제 아래에서 초자아는 왜곡됩니다. 개인의 도덕 기준은 집단 이데올로기에 의해 대체되고, 명령에 대한 복종은 도덕적 행위로 재정의됩니다. 이는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과도 연결됩니다. 권위에 대한 복종이 개인의 도덕 판단을 압도할 때, 잔혹한 행동조차 합리화됩니다.
헤트비히가 이곳을 “나의 왕국”이라 부르며 전근을 거부하는 장면은 집단 동일시의 극단적 사례입니다. 그녀는 개인으로서 판단하기보다 체제의 일부로 자신을 인식합니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와도 연결됩니다. 개인은 불안한 자유 대신, 강력한 권위 체제 속에서 안정을 찾으려 합니다.
가해자의 시선과 그림자: 억압된 죄책감
칼 융의 ‘그림자(shadow)’ 개념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해석하는 중요한 틀을 제공합니다. 그림자는 개인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어두운 자아의 일부입니다. 루돌프가 복도에서 헛구역질을 하는 장면은 억압된 죄책감의 미세한 표출로 읽힐 수 있습니다. 이는 완전한 무감각이 아니라, 억압된 감정이 일시적으로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체제의 관리자 역할로 돌아갑니다. 그림자를 통합하지 못한 자아는 체제의 논리 속으로 재흡수됩니다. 영화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의 일상을 보여주는 이유는, 악이 비정상적 괴물이 아니라 억압된 그림자를 외면한 평범한 인간에게서 발생한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과를 숨기는 소녀의 장면은 집단 속에서도 남아 있는 개별적 도덕 자아를 상징합니다. 이는 초자아가 완전히 왜곡되지 않은 인간의 흔적이며, 집단 심리 속에서도 개인의 윤리가 유지될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결론: 해리와 무감각 속에서 사라지는 책임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폭력을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인간이 어떻게 폭력과 공존할 수 있는지를 심리적으로 해부합니다.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융의 그림자,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밀그램의 복종 이론, 프롬의 집단 동일시 개념은 이 영화의 인물들을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과거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현실을 분리하고, 불편한 진실을 차단하며, 집단 논리 속에서 개인적 책임을 희석시키는가. 악은 갑작스럽게 등장하지 않습니다. 해리와 무감각, 그리고 반복된 합리화를 통해 서서히 정상화됩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 과정을 차갑게 보여주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보고도 보지 않는가.”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