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상실의 심리, 무의식과 상징, 성장의 정신역동)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상실의 심리, 무의식과 상징, 성장의 정신역동)

노란색 부리를 가진 앵무새의 모습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시 떠올리면, 이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마음의 이야기’에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전쟁 속에서 어머니를 잃은 소년 마히토의 여정은 외부 세계의 모험이라기보다 내면 세계의 이동처럼 보입니다. 정신건강학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상실, 애도, 무의식, 그리고 자아 성장이라는 심리적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특히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칼 융(Carl Gustav Jung),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 등의 정신분석 이론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상실과 무의식: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본 마히토의 내면

마히토가 돌멩이로 스스로를 다치게 하는 장면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정신분석학적으로 ‘애도와 멜랑콜리아’의 상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프로이트는 상실을 겪은 개인이 때로는 상실된 대상을 자신 안으로 끌어들여 자기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마히토의 행동은 바로 이 자기 공격적 애도의 형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왜가리의 존재 역시 흥미롭습니다. 처음에는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위협적인 존재로 등장하지만, 이후에는 조력자로 변합니다. 이는 억압된 감정이 의식화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왜가리는 ‘무의식 속 억압된 감정’이 상징적으로 형상화된 존재이며, 마히토가 이를 받아들이는 순간 심리적 통합이 이루어집니다.

탑이라는 공간은 무의식의 구조처럼 느껴집니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이고 논리가 붕괴되는 이 공간은 꿈의 세계와 유사하며, 프로이트가 말한 ‘꿈의 상징 체계’와 닮아 있습니다. 마히토는 탑 속에서 자신의 상실과 두려움을 직면하고, 억압된 감정을 하나씩 마주하며 심리적 재구성을 경험합니다.

융의 집단무의식과 상징: 왜가리, 탑, 그리고 존재의 의미

칼 융의 분석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는 ‘개성화 과정(individuation)’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개성화란 자아가 무의식과 통합되며 진정한 자기(Self)에 도달하는 과정입니다. 마히토의 여정은 바로 이 개성화 과정과 매우 유사합니다.

왜가리는 ‘그림자(Shadow)’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림자는 개인이 억압하고 인정하지 않는 자아의 어두운 측면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위협적이던 왜가리가 이후 조력자로 변하는 과정은 마히토가 자신의 그림자를 통합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와라와라는 ‘새로운 생명’이자 가능성, 즉 융이 말한 ‘Self’의 잠재적 형태로 해석됩니다. 반면 이를 잡아먹는 펠리컨은 집단적 불안과 생존 본능을 상징합니다. 이는 인간의 본능적 충동과 초월적 성장 사이의 갈등 구조를 보여줍니다.

앵무새들은 융의 관점에서 ‘집단 무의식 속 권력 구조’를 상징합니다. 동일한 말을 반복하고 질서를 강요하는 모습은 인간이 안정과 통제를 추구하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마히토가 탑의 계승자가 되기를 거부하는 장면은 집단 구조가 아닌 개인의 자아를 선택하는 순간, 즉 개성화의 완성을 의미합니다.

성장과 치유: 위니컷의 관점에서 본 심리적 회복

도널드 위니컷은 인간이 상실을 극복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중간영역(Transitional Space)’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실과 환상이 만나는 공간, 즉 안전한 심리적 놀이 공간이 개인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영화 속 탑과 환상 세계는 바로 이 중간영역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히토는 현실 세계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상실을 환상 세계에서 재구성합니다. 이는 정신건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치유 과정입니다. 위니컷의 관점에서 보면 마히토는 환상 공간에서 상실을 다시 경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결국 현실로 돌아와 성숙한 자아를 형성합니다.

탑의 계승자가 되라는 제안을 거부하는 장면은 ‘자율적 자아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질서를 유지하는 대신 자신의 세계를 선택하는 순간, 마히토는 의존적 존재에서 독립적 존재로 전환됩니다. 이는 정신발달 이론에서 말하는 ‘심리적 분리와 개별화’의 완성 단계와 유사합니다.

결국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판타지의 외형을 지니고 있지만, 그 내면은 매우 깊은 정신역동적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상실을 경험한 개인이 무의식과 마주하고, 그림자를 통합하며, 새로운 자아로 성장해가는 과정은 인간 심리의 본질적 구조를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우리 각자가 삶 속에서 겪는 상실과 성장, 그리고 선택의 문제를 조용히 되묻습니다. 결국 이 작품이 남기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상실 이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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